SK하이닉스 A!SK 면접을 봤고,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불합격한 김에 정리해본다.
사실 면접 끝나고 나서부터 어느 정도 느낌은 있었다. SKCT도 시원하게 잘 본 느낌은 아니었고 (1과목 빼곤 반도 못풀었다.. 쩝;),
A!SK도 답변하면서 계속 아 이거 너무 길어지는데? 싶은 순간이 있었다. 기대를 하는 게 양심이 없다는 생각도 조금 있었다.
그치만 면접 질문이 생각보다 괜찮았고, 내가 어디서 절었는지도 꽤 선명하게 남았다.
그래서 이건 불합격 복기다.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될 수도 있고, 나한테는 다음 면접 때 같은 실수를 안 하기 위한 메모다.
이번 면접에서 제일 크게 느낀 건 이거다.
아는 걸 다 말하면 안 된다.
나는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오면 반가워서 신나게 말하는 편이다.
kt 면접때도 말이 많아서 면접이 좀 길어졌고 중간에 커트해주시기도 했다.
문제는 면접은 아는 것 자랑 대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A!SK는 사람이 아니라 AI 기반 면접이라서 얄짤없다.
시간 안에 질문에 맞는 말만 꺼내야 하는데, 나는 중간중간 TMI를 너무 많이 방출했다.
먼저 1분짜리 답변이 있었다.
질문은 본인 소개와 함께 왜 해당 직무에 지원했는지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내가 준비한 방향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복잡한 현상을 데이터로 해석하고, 개선 지표를 만들어서 사람을 설득해본 엔지니어다. 대학원에서도 그랬고, KT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SK하이닉스 양산기술 직무에서도 공정 현상을 숫자로 보고, 개선 포인트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근데 1분은 너무 짧다.
말 많은 사람에게 1분은 거의 랩이다. 자기소개, 지원동기, 직무 연결성까지 다 넣으려면 사실상 한 문장 한 문장을 칼같이 쳐내야 한다.
말하다보면 TMI가 나오는데 TMI 말하면 1분 끝난다..
지금 다시 보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저는 복잡한 현상을 데이터로 해석하고, 개선 가능한 지표로 바꿔서 조직을 설득해온 엔지니어입니다. 양산기술 직무에서도 공정 문제를 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재현 가능한 기준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근데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 않다. 자소서에 없는 내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 같고, 대학원 이야기도 넣고 싶고, KT에서 했던 것도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1분은 순식간에 끝난다. 나는 여기서 이미 조금 절었다.
다음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었다.
이건 석사 연구 경험을 말했다. 연구 주제를 어떻게 정했고, 잘 안 풀리는 문제를 어떻게 붙잡고 해결했는지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질문도 내가 제일 절었던 질문 중 하나다.
연구 경험은 말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왜 그 주제를 골랐는지, 어떤 실험을 했는지, 뭐가 안 됐는지, 어떻게 바꿨는지, 결과가 어땠는지까지 다 말하고 싶어진다. 근데 면접 답변은 논문 발표가 아니다. 내가 한 연구의 전체 히스토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어떤 방식으로 버티고 푸는지를 보고 싶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아깝다고 다 들고 가면 결국 핵심이 흐려진다. 이번엔 내가 딱 그랬다.
팀워크 질문도 나왔다.
상황은 이랬다. 내가 솔직하게 피드백을 했는데, 그 뒤로 팀원이 마음이 상해서 업무 협조를 안 한다.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 관계 회복이 안 되면 업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나는 남한테 세게 피드백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질문 자체가 약간 낯설었다. 그래도 답변은 그냥 내가 일하는 방식대로 했다. 먼저 찾아가서 설명하고, 오해가 있으면 풀고, 사과할 부분이 있으면 사과한다. 그래도 업무 협조가 안 되면 필요한 내용은 메일이나 공식 채널에 남겨서 업무가 멈추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원문 메모에는 팀장 센터장 참조 같은 식으로 써놨는데, 다시 보니 공개 글에서는 너무 세게 읽힌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누군가를 압박하겠다는 게 아니라, 감정 문제와 업무 진행은 분리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관계 회복은 최대한 한다.
근데 업무는 기록으로 남긴다.
이 정도로 말했으면 더 깔끔했을 것 같다.
직무 질문은 각 3분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오히려 시간이 길어서 문제였다. 1분은 짧아서 절었고, 3분은 길어서 신났다.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오니까 반가워서 TMI를 쏟아냈다.
준비는 DRAM, NAND 동작 원리와 구조를 중심으로 했다. 면접 당일 오전에는 학부 때 공부했던 플라즈마 물리학 필기도 다시 봤다. 학부 졸업하고 필기를 안 버린 게 이때 처음으로 도움이 됐다.
근데 질문은 사람들이 흔히 준비할 것 같은 정석 문제만 나오지는 않았다. 약간 수업 중간중간에 나오는 토막 지식 같은 느낌이었다. 아 이걸 물어본다고? 싶은데 또 아예 모르는 건 아닌 그런 질문들.
첫 질문은 컴퓨터에서 메모리의 역할이었다.
나는 메모리가 로직 반도체가 계산할 데이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속도와 용량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도 말했고, SRAM, DRAM, NAND 같은 계층도 이야기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AI 수요, HBM, CXL, GPU 병목, NVIDIA의 KV cache 이야기까지 슬금슬금 넘어갔다. 사실 이것도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 AI 시스템에서 메모리 병목은 중요한 이슈니까. 근데 질문은 컴퓨터에서 메모리의 역할이었다.
여기서 내가 해야 했던 답은 훨씬 단순했다.
메모리는 연산 장치가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공급하는 계층이다. CPU나 GPU가 아무리 빨라도 데이터를 못 받으면 병목이 생긴다. 그래서 시스템은 빠르지만 작은 메모리와 느리지만 큰 저장장치를 계층적으로 쓴다.
이 정도면 됐다.
HBM, CXL, KV cache는 시간이 남으면 한 문장만 붙였어야 했다. 근데 준비한게 아까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건 명백히 TMI였다.
다음 질문은 박막 응력이었다. 왜 박막응력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건 스퍼터링 공부할 때 잠깐 들었던 내용이라 답은 할 수 있었다. 박막 응력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박막을 올리거나 산화막을 만들 때 생기는 잔류응력이다. 재료의 격자 구조 차이, 열팽창 차이, 증착 조건 같은 것들이 영향을 준다. 응력이 잘 제어되지 않으면 웨이퍼가 휘거나, 계면 결함이 생기거나, 박막 균열과 소자 특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면접에서는 이걸 조금 뭉뚱그려 말했다.
실리콘이 크리스탈인데 그 위에 박막을 올리면 계면에서 구조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긴다. 그래서 어닐링 같은 열처리로 안정화가 필요하다.
대충 방향은 맞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원인을 더 나눠서 말했으면 좋았겠다. 격자 불일치, 열팽창계수 차이, 증착 조건. 이렇게만 말했어도 훨씬 반도체 면접 답변처럼 들렸을 것이다. (너무 물리학과의 관점으로 이야기했다)
그 다음 질문은 EUV에서 왜 렌즈가 아니라 거울을 쓰는지 였다.
이건 면접 당일 오전에 본 플라즈마 필기가 도움이 됐다. EUV는 물질에 너무 잘 흡수된다. 공기에도 흡수되기 때문에 고진공이 필요하고, 렌즈를 통과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특수한 다층막 거울로 반사시키는 구조를 쓴다. EUV 광원은 주석 액적에 CO2 레이저 펄스를 쏴서 플라즈마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EUV 빛을 얻는다.
여기까지 말하면 충분했다.
그런데 또 연구실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미러에 주석이 증착되는 걸 대기압 플라즈마로 제거하는 과제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펠리클 코팅 과제 같은 것도 살짝 언급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괜히 말했다.
질문은 EUV에서 왜 렌즈가 아니라 거울을 쓰는가였다. 내 연구 경험은 답변을 보강하는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그걸 길게 말하면 질문의 답이 흐려진다.
면접에서 경험은 양념이지 본문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이 앞에 있는 면접이면 사람에 따라 좋을 수 있지만.. AI가 평가할 땐 문제의 핵심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판단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알루미늄 대신 구리로 배선할 때의 장점과 단점도 물어봤다.
이건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나는 금속을 배선 관점으로 깊게 정리했다기보다는 학부 때 쇼트키 접합 같은 맥락에서 봤던 기억이 더 컸다.
당시에는 구리가 알루미늄보다 열관리에 좋고, 신호 특성이 좋고, 단가가 비싸고, 새로운 공법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다시 정리하면 핵심은 열관리보다 전기 저항과 신뢰성이다.
구리는 알루미늄보다 저항이 낮아서 배선 지연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미세화된 배선에서는 성능과 신뢰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반대로 구리는 실리콘 안으로 확산되면 소자 특성을 망칠 수 있어서 확산 방지막과 공정 제어가 중요하다.
즉 장점은 낮은 저항과 성능.
단점은 오염 리스크와 공정 복잡도를 이야기 했어야 했다.
결론은 면접은 내가 아는 걸 전부 꺼내는 자리가 아니다.
나는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오면 신나서 말이 많아진다. 근데 면접에서는 많이 말하는 것보다, 질문에 맞는 말을 먼저 꽂는 게 중요하다. 특히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더 그렇다.
다시 면접을 준비한다면 답변 구조를 좀 준비하고 가야겠다.
첫 문장은 결론.
두 번째 문장은 원리.
세 번째 문장은 내 경험.
네 번째 문장은 직무 연결.
예를 들어 EUV 질문이면 이렇게 시작했어야 했다.
EUV는 물질에 잘 흡수되기 때문에 렌즈가 아니라 다층막 거울과 진공 광 경로를 사용합니다.
그다음에 주석 액적, CO2 레이저, 플라즈마를 설명한다. 시간이 남으면 내 연구 경험을 한 문장만 붙인다. 마지막에는 양산기술에서는 광원 안정성, 오염, 반사율 같은 변수가 수율과 직결된다고 좀 말하면 될꺼 같다.
불합격은 아쉽다.
그렇지만 또 배울 점과 필요한 점을 배운 시간이었다.
다음 면접에서는 내가 아는 걸 다 보여주려고 하기보다, 질문 하나에 맞는 한 문장부터 정확히 꽂아야겠다. 그리고 TMI는.. TMI라고 느끼는 순간 바로 그만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