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타인에게 있다.
슬프지만 저자의 과학적인 추론에서 나온 결론이다.
진정한 행복은 타인과의 긍정적인 관계에서 나온다.
밤늦게 전철에서 침흘리고 자다가 깨서 굉장히 민망 했던 경험이 있다.
자리에서 도망치듯 일어나서 다른 칸으로 갔지만
부끄러운 기분은 여전했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봤을까? 덜떨어져보였으면 어쩌지?
저자의 표현대로
“객관적으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 내 행복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는 명백하게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저자는 타인이 나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진정한 행복이 타인에게 있다고 한다.
이는 요즘 유행하는 힐링에세이의 교훈과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힐링 에세이들의 공통적인 교훈들이 있다. 타인에게서 상처받지 말고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교훈들..)
저자는 어떤 근거로 행복은 타인에게 있다고 할까?
불행만 가져다주는 지긋지긋한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까?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는 지극히 다윈적이다.
뇌는 진화론적으로 이득이 있는 쪽으로만 진화한다.
좀더 다윈스러운 표현으로, 사회생활은 진화적으로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슬프게도 이런 진화적 이득을 주는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이행하지 못한 종은 멸망했다.
인간의 사회적 집단은 엄청나게 성공했기 때문에 그동안 진화를 이끌어 왔던 생태학적 경쟁력보다 사회적 경쟁력이 더 힘을 발휘하게 된다. … 환경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집단에 들어가선 이상 이제 우선순위는 환경이 아닌 집단이 된다. 집단내에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침팬지에게 바나나를 준다면 침팬지는 바나나에 집중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바나나를 주면 그 사람은 바나나를 준 당신에게 더 집중할 것이다. … 이것은 생물의 어떤 종이 환경적 힘이 아닌 사회적 힘에 따라 진화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 소속된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소외당한다면 이건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 우리가 진화해온 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그건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다. 우리의 논리적인 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을 받는 것을 죽는냐 사느냐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뇌가 알고 있는 한 이건 생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화적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생물학적으로도 인간은 사회적 행동에서 행복을 느낀다.
사실은 인간이 아닌 생쥐의 경우지만, 2014년 리사 A. 구나이딘의 실험을 통해 특정회로가 복측피개부와 중격의지핵을 뇌의 사회적 행동을 인코딩하고 예측하는 영역과 연결시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책의 reference : Harmer, C. J., G. M. Goodwin and P. J. Cowen, ‘Why do antidepressants take so long to work? A cognitive neuropsychological model of antidepressant drug action’,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 2009, 195(2), pp. 102–108)
책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과의 단순한 상호작용 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합당한 근거도 있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를 조절하는 매커니즘이 바로 즐거움에 대한 경험을 관장하는 뇌 영역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열렬히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약하면
1. 인간의 사회는 너무나 고도로 발달하였기에 생존에 있어서 진화적으로 매우매우 중요하다
2. 뇌의 입장에서 사회에서의 부적응은 곧 객체의 죽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3. 다른 사람과의 접촉에서 뇌는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되었다
그럼 사회에서 부적응하고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관계만 형성된다면?
이 모든 질문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이 사회에서 난 불행하다"라는 뜻이다.
행복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꼼짝없이 불행한 곳에서 불행한 인생을 살며 나를 좀먹어야 할까?
그건 스트레스에 강한 식물이나 가능한 일이고,
나는 두 다리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이다.
자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능을 가진 고등생물이기도 하다.
뇌는 어쩔 수 없이 관계에서 행복을 느낀다.
불행한 관계는 뇌에게 불행을 느끼게하고
불행해진다.
나쁜 관계속에 있으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의 방법은 마약을 하든 술을 진탕마시든지 해서
뇌의 다른 회로를 망가트리는 것이다. 뇌가 관계속에서 행복을 느끼므로 (사회적 관계는 섬피질에게 신호를 보내며 섬피질은 즐거운 감각, 마약중독과 같은 보상을 쫓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보상회로를 모두 마비시키면 적어도 관계에 의해 불행한 일은 없어질 것이다.
나머지 방법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다시말해 속해있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힐링에세이를 즐겨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어떤 점에선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않고 힐링만 시켜준다.
지금 있는 던전이 불지옥인데 물약만 계속 먹는다고 불지옥이 천국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위안을 받은 이유는 뇌가 관계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때 혼자서 행복할 수 없다.
뇌가 그렇게 진화했고 이미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회로가 뇌에 실제해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뇌를 고치던가 속한 사회를 고치는 수 밖에
나를 괴롭히던 관계에서 멀어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군대가 이럴때에는 도움이 되었다.
나는 사회적 뇌를 가진 인간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사회에서도 적응해 행복을 추구해야만 한다.
어쩌면 다른 사회도 불행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또 옮기면 그만이다. 아님 뇌를 파괴하거나
인간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물이다.
왜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전세계에 퍼졌겠는가?
그들도 다 새로운 환경을 찾아서 떠난 것이다.
불행을 가져다주는 사회를 피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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