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길게하는 것이지만 그냥 물린채로 기다리기만 하는건 장기투자가 아니다.
기업과 세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이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가설을 점검하는 것이 장기투자이다.
주식의 가격과 관련 없이 기업의 방향성과 세상의 흐름이 나의 가설과 맞다면 계속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고,
기업의 방향이나 세상의 흐름이 내가 세울 가설과 너무 다르게 흘러간다면 매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 가설이 맞다는 걸 확인하는 건 행복하겠지만…
내 가설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또 같은 이유로 돈을 잃을 수는 없다.
특히 나는 가상화폐에 투기를 했다가 대학생활 내내 쪼들리게 살았기 때문에…
투자에는 정답이 없지만 확실한 오답은 있다.
지금까지 경험한 확실한 오답으로 가는 길은, 확실한 판단 근거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물려있는 대부분의 투자자본은 다 근거 없는 성급한 결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성급한 결정임을 알 수 있는 나름의 판단기준은 바로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의심이 없다는 점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고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투자는 스스로의 선택을 계속 의심하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장 상황은 A였는데 지금 보니까 B로 가는 거 같기도 한데… 그럼 투자방향을 수정해야 하나?
이런 식의 고민을 계속하면서 내 결정이 어느 정도까지 타당했고 어떤 건 확실하게 틀렸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은 이유 없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판단 근거가 딱히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면서 결정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나중에 만들어진 이 투자의 이유는 주식이 오를 때 큰 쾌락을 주지만(마치 찍은 시험문제를 맞혔을 때처럼..)
떨어질 때는 오히려 이 자기 합리화가 발목을 잡아 손절을 못하게 한다. (판단기준이 없으니 그냥 무지성 존버가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투자는 2018년에서 시작된다.
이때의 투자는… 투기에 가까웠다.
남의 말만 듣고 코인을 했다가 3년 동안 물려있었고 그 당시 계속 물을 탔음에도 -80% 까지 내려가서 대학생 시절의 거의 전재산을 쓰지도 못하고 속 쓰리게 보고만 있었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배를 굶을 일 없이…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었다.
그 후 2020년 코로나 이후 떨어진 주식시장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들어간다.
나름 투자에 관련한 다양한 책도 읽어보고, 해외시장과 신기술 등을 공부하면서 투자를 했다.
투자를 하면서 가졌던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였다.
1. 코로나가 끝나면 소비재 관련 유통과 물류 기업들이 사람들의 일상 회복으로 인한 보복 소비 등으로 실적을 빠르게 회복하여 실적이 회복될 것이다.
2. 코로나로 인해 생겼던 비대면 인프라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5G 기술의 발전이 클라우드 기업들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3. 혹시 금리가 오르더라도 은행 및 금융주를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 방어가 될 것이다
이 중 1번 시나리오에 대한 오답노트이다.
시나리오의 키워드는 <일상 회복> <보복 소비> <실적의 회복>이다.
성공한 투자는 기업의 성장으로 인한 가치 상승과 그에 따른 주가의 상승을 통해 이익을 보는 게 성공한 투자라고 정의하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주가가 떨어져서 세금을 감면하고 배당이익을 누리는걸 더 좋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일상 회복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상 회복이 뭘까? 사람들이 코로나 이전처럼 밖으로 나와서 소비를 즐기고 야외활동을 즐기는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 회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들의 지갑 사정이다.
코로나가 끝나도 소비를 할 돈이 없거나,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 그것도 일상 회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일자리가 아직 있는지, 즉 실업률이 코로나가 끝나면서 다시 회복이 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실업률이 회복 중이고 소비심리도 좋으면 일상 회복이라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가?
고등학생 시절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배우면서 (남학생들은 이걸 주로 장난으로 때리는데 많이 사용했다) 수요와 공급의 곡선에 대해서 한번쯤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물건이 남아 넘쳐서 팔리지 않는 거는 봤어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경우라고 해도 그 대상이 주로 수입품이거나 자연산 산삼과 같은 희소성이 있는 자원에 해당했다.
코로나가 오고,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심지어는 기후위기까지 오면서, 공급에 의해 시장이 좌우되는 현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라고 하는 건 식량공급이라고 한다.
밀과 같은 곡물 가격이 엄청나게 오를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 이렇게 치솟는 공급 가격을 유통업체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그다음은 보복 소비이다
보복 소비로 사람들이 돈을 펑펑 쓰면 기업에게 좋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무엇을 보복 소비할 것인가? 이건 생각하지 못했다.
인터넷 쇼핑이 잘 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 시기에도 일반적인 생필품이 궁하거나 구할 수 없는 상황은 없었다.
쉽게 집에서도 구할 수 있는 생필품을 사람들이 굳이 보복 소비를 하게 될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냥 돈을 쓰면 파는 기업들이 좋겠지? 이 정도만 생각이 미쳤던 거 같다.
그 돈이 정확히 어디로 향하고 어떤 기업이 이익을 볼 것인가? 이런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가져가지 못했다.
내가 놓친 가장 큰 키워드는… 기업의 실적 회복이다.
물건 잘 팔면 실적 회복되고 기업이 성장하겠지?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기업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는 하지만 가장 큰 당면과제는 현재 생존하는 것이다.
직원들 월급 줘야 하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탓만 하면서 가만히 있는 기업은 망하는 기업뿐이다.
지금 당장 생존이 문제인데, 과연 유통과 물류체계 (돈이 나오는 구조)가 코로나 이전과 동일할까?
코로나 이전과 동일한 수익구조를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기업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살아남으려면 변화해야 한다. 돈이 나오는 구멍을 찾아서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코로나로 여행이 막히자 항공물류회사로 변화했다.
항공유의 수요 감소로 인해 기름값을 아끼고 항공물류 전환으로 인해 코로나 시기에 어닝서프라이즈도 했었다.
그럼 코로나가 끝나는 게 이 기업에게 좋을까? 항공유의 수요는 커질 것이고 기름값은 오를 것이다.
게다가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실어 날라 야한다. 사람을 응대하는 스튜어디스도 뽑아야 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물건 날라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렸는데.. 언제 예약을 취소할지 모르는 사람을 태워야 한다. 과연 변화된 수익구조에서 코로나가 끝난 게 대한항공에게 긍정적일까?
이마트는 코로나 시기에 쓱 배송 등의 신선식품 유통으로 좋은 실적을 냈다.
신선식품 유통을 위해 이마트는 유통체인을 바꾸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을 것이다. 근데 코로나가 끝나서 사람들이 이마트에 와서 오프라인으로 소비를 한다면… 이전에 만들어놓은 유통체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마트 오프라인 매장의 실적을 깎아먹는 제 살을 깎아먹는 전략을 계속 비용을 들이면서 유지하게 될까? 과연… 실적을 회복해서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지 못했다.
미중 무역전쟁이라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던가 하는 문제는 예측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위기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위기인 것이다.
하지만 위의 오답들은 좀 더 깊게 생각했다면, 좀 더 철저하게 이익구조를 따져봤다면 기업(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악재를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업의 악재를 기업들이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보고 과감하게 투자를 이어나갈 수도, 손절이든 익절이든 팔고 관망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편적이고 일반적인 생각들만 가지고 투자를 했기 때문에.
코인 투기를 했을 때처럼 무기력하게 존버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라는 슬픈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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